나르시시스트, 꼭 그렇게 불러야 할까?

단정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은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쓰레드나 릴스등을 보면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이 정말 많이 보입니다. 짧은 영상의 댓글에도, ‘그 사람 완전 나르시시스트 같아’라는 말이 너무 쉽게 적히고,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방법 등과 같은 제목의 글이나 영상도 많이 눈에 띄지요. ‘ADHD’ 나 ‘HSP’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가 이렇게나 많이 일상에서 쓰이다보니,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단 쉽게 단정하게 되는 경향도 보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이 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혼자 고민하고 삼키던 불편함을 이제는 말로 꺼낼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이 자신의 감정을 더 진지하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다만 언어가 널리 퍼질수록, 설명을 돕는 말과 판단을 서두르게 하는 말이 섞인다는 사실이 지금의 현상을 낳은 것이죠.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말을 쓰지 말자 라기보다, 그 말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입니다.

왜 우리는 사람보다 라벨을 먼저 붙이게 될까요?

요즘처럼 모든 것들을 온라인에서 접하는 우리는 온라인에서 반복해서 접한 단어에 쉽게 익숙해집니다.

익숙한 단어는 내가 그 단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고, 이해했다는 느낌은 곧 확신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배운 무언가를 빨리 써먹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주변을 살피다 누군가의 몇 가지 행동을 본 뒤, 복잡한 맥락을 살피기보다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저 사람은 나르시시스트가 분명해!’ 혹은 ‘난 분명 ADHD일꺼야. ADHD의 특징이라고 인스타에서 본 것들 중에 3가지나 나와 너무 똑같아!’ 와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지쳐있을수록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고 쉽고 빠르게 정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심신이 지쳐있는 현대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름 붙이기보다 경험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더 도움이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온라인 공간이 가진 특징입니다. 특히나 자극적이고 짧고 강한 표현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social media의 특성상 저런 단어들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정확한 이해보다 빠른 해석에 익숙해지게 되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받아들이게 되곤 하죠.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를 돕습니다

상담 장면에서 자주 드리는 말씀 중 하나는, 사람을 단적으로 규정하는 말보다 경험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는 말이 개인의 이해와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 같아요”라고 말하는 대신, “제가 말을 꺼낼 때마다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돌리는 통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함께 일을 했지만 실수가 발견되면 늘 저에게 책임을 전가했어요.”, “함께 있을 때, 제 감정보다 상대 반응을 먼저 계산하게 됐어요”와 같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자세히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경험이 더 선명해지고, 무엇이 불편했는지, 어떤 경계가 필요했는지, 내가 어떤 관계 패턴에 민감한지도 더 잘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이 과정은 단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막연한 괴로움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면, 그 감정은 조금 더 다룰 수 있는 형태가 됩니다. “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다”라고 이야기할 때보다, “나를 무시한다고 느꼈고, 그 이후로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더욱 확실해 졌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우린 더 정확하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정확한 언어가 구구절절 변명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구체적인 묘사는 내 경험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겪은 불편과 상처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관점을 조금 바꾸면 좋겠습니다.

정확한 언어는 관계를 정리할 때도 나를 더 잘 지켜줍니다

자신의 경험을 자세하게 적어볼 수 있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HSP’, 혹은 ‘ADHD’와 같이 사람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면 순간적으로는 속이 시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다음 문장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앞으로 저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맺고 또 이어가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갈등을 다룰지에 대해 잘 정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내 일상이 달라집니다. 라벨은 감정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삶을 바꾸는 계획서가 되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계를 돌아볼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만큼이나 “그 사람과 있을 때 나는 어떤 경험을 반복하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누군가와 대화한 뒤 유난히 긴장감이 남아 있진 않은지,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지레 포기하게 되는지, 별거 아닌 이야기였는데도 싸움이 되진 않았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죠. 이런 관찰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내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활 정보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는 나의 건강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특히나 정확한 감정과 경험의 맥락이 함께 있다면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나 상대방과의 갈등이 내 책임이라고 자책하거나 실수의 빌미를 나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다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과도한 확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는 이런 상황에서 힘들어지는구나”, “이 관계에서는 이런 경계가 필요하구나”와 같은 이해를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심리상담은 바로 이런 언어들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나와 남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

위에서 언급한 전문 용어들이 널리 알려진 시대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검색하고, 배우고, 이름 붙여 보려는 마음 자체를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언어가 정말 나를 돕는 방향으로 쓰이려면, 빠른 확신보다 정확한 묘사와 맥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혹시 요즘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자꾸 흔들리신다면, 먼저 내 경험을 천천히 적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기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무게가 혼자 감당하기 버겁게 느껴질 때는, 전문가와 함께 안전하게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기다립니다.

MindGym.

*함께 읽어볼만한 글*

마인드짐 Mindgym(@mindgymkorea)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네이버 예약 페이지

https://naver.me/xzxBxRxQ


MindGym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위로 스크롤

MindGym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