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여러 사람이 같은 일을 겪어도도 누군가는 금세 털어내고, 누군가는 더 오랫동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제가 지난 15년간 상담실에서 만난 내담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트라우마는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내 마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도 트라우마를 ‘사건 자체’가 아닌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반응’을 중심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사건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반응이다
우리는 보통 트라우마를 ‘끔찍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죠. 분명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라고 하면 전쟁이나 학대와 같은 듣기에도 거북한 사건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지요.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트라우마는 그저 사건 자체가 끔찍한 것이라기보다는 내 뇌와 마음이 특정 경험을 감당하지 못할 때 생기는 반응입니다.
같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까요? 같은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경험을 했을 때, 운전자는 핸들을 잡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통제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조수석 승객은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느낄 수 있거든요. 이런 차이가 바로 트라우마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력감’ 이론에서도 설명하듯,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더 깊은 심리적 상처가 남게 되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나’가 아니라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입니다. 사건이 나에게 “이건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패배감과 지속적인 두려움을 남기는 순간, 우리 뇌는 계속해서 위험신호를 보내며 균형을 잃게 되죠. 이때 자율신경계가 지속적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과도한 경계심과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소해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 정도는 별일 아니야”
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상담실에서 만나는 분들을 보면, 남들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일도 그 사람에겐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자주 목격합니다. 따라서 내 기준에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평가하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섵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이 “고통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에 부여하는 의미가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여섯 살 아이가 피곤한 엄마가 잠깐 누운 모습을 봤을 때, 어른 눈에는 대수롭지 않지만 아이에겐 “엄마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존 불안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발달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리 불안’이 이런 상황에서 트라우마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죠.
회사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중년 직장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서는 “얼마든지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꺼야!!”라고 하지만, 그 사람에겐 해고당하는 사건 자체가 자존감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한 사건을 바라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내면적 소화 능력의 차이가 그 사건이 상처가 되고 안되고를, 더 나아가 트라우마가 되고 안되고를 결정하게 됩니다.
상처로부터 나를 지키는 세 가지 힘:

트라우마 연구에서 밝혀낸 세 가지 결정적 요인이 있습니다:
-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는가?
- 상황에 대한 통제감이 있었는가?
- 그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했는가?
이는 리처드 라자루스(Richard Lazarus)의 인지적 평가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 개인이 어떻게 1차 평가(위협 정도)와 2차 평가(대처 자원)를 하는지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이죠. 특히 회복탄력성(resilience) 연구에서는 이 세 요인이 개인의 심리적 면역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제시되고 있어요.
같은 군 복무 중 폭발사고를 겪은 두 군인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한 명은 복귀 후 평온하게 일상으로 돌아오고, 다른 한 명은 PTSD로 고통받습니다. 여기에는 “내가 이겨낼 힘이 있다”는 신념, 가족과 동료의 지지, 과거 위기를 극복한 경험 등이 영향을 미치죠. 소방관이나 경찰들이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이유도 훈련과 동료관계, 그리고 상황에 대한 통제감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고통은 영원할 거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패배적 믿음에 빠지면, 뇌와 몸은 계속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때 형성되는 부정적인 사고의 패턴은 미래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동일한 반응 패턴을 반복하게 만들어요.
실제 상담 사례에서 본 상처와 회복의 차이
회사 내에서 따돌림을 경험한 30대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자신이 잘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못 나서 그래. 회사에서 날 필요로 하지 않아”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런 사고가 점점 깊어지고 내면에서 확대되어 도저히 ‘더 이상 이 회사는 다닐 수가 없다. 퇴사만이 답이다.’ 라는 생각에까지 도달을 했지요. 그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확신을 얻고자 심리상담을 신청했습니다.
심리상담 과정에서 그 사람은 자신이 겪은 따돌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또 그것을 이겨내기 위하여 자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사를 포함하여 다수가 연합한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는 사실도 인정했구요. 결과적으로 그러한 따돌림이 자신의 부족함이 원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인식 전환을 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심리상담은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가진 힘과 통찰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지요.
심리상담, 언제 필요할까?

혹시 지금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나만 유독 약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한 번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트라우마는 각자 살아온 방식, 상황을 해석하는 습관, 위기 대처 자원에 따라 상처의 크기도 회복 속도도 달라집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이를 ‘개인차 요인’이라고 하는데, 성격, 생활사, 사회적 지지체계, 대처 방식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죠.
심리상담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의 자동반응과 오래된 ‘해석 습관’을 돌아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상황을 재해석하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력감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발견하도록 돕는다는 점입니다.
트라우마 극복의 첫걸음은 무엇일까요? “내가 약해서 이렇다”고 자책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은 상처받은 마음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회복은 마라톤과 같아서 인내심과 꾸준함이 필요하지만, 적절한 치료적 개입을 통해 충분히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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