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해 못했던 것들: 변화와 수용

용각산은 저에게 변화와 수용의 아이콘입니다.

예전에 일본 여행을 갔었습니다. 여행객들이게 필수 관광코스인 돈키호테에도 들렀지요. 그곳에서 이것저것 유명하다는 물건들을 집다가 용각산 대용량도 하나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심리상담사로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목관리 아이템들에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지금 제 책상에만 봐도 인후염 치료제, 프로폴리스, 용각산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각산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바로 어린시절 할머니 댁에 방문했다 본 은색통의 강렬한 기억이지요. 할머니는 안방 한구석에서 그 은색통을 여시고 작은 스푼으로 하얀 가루를 떠 드시곤 했습니다. 명절 날이었을까요? 아무도 없는 안방에서 그 은색 통을 열고 호기심에 몰래 한 입 털어 넣었다가 그 텁텁하고 쓴맛에 콜록대며 뚜껑을 닫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할머니께서 도대체 왜 그런 이상한 걸 드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목이 칼칼해진 저 자신이 할머니와 똑같이 그 하얀 가루를 털어놓는 것을 보며 깨닫습니다. 분명 그때는 틀렸던 것이, 지금의 제게는 너무나도 맞는 일이 된 것이지요.

영원함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모든 것은 변한다

두쫀쿠의 유행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어떤 가치나 관계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머물러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굳건해 보이던 것들이 어느새 희미해지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지요.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 탕후루를 먹네? 했지만 이젠 두쪽쿠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익숙함에 대한 선호가 이러한 변화를 외면하거나 거스르게 하곤 하죠.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의 모습에 집착하느라 현재의 소중한 의미를 놓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화란 결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할머니께서 드시던 용각산이 제게 더 이상 ‘이상한 약’이 아니라 ‘필요한 지혜’로 다가온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고정된 사진첩이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가는 영상으로 생각한다면, 사라져가고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 대신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내면의 잣대를 재조정하기: 유연한 마음이 주는 자유

크록스가 그렇게 싫다던 사람도 어느샌가 편하게 신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우리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기준과 선호의 목록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정체성의 근간이 되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이전과는 달리 어제까지 그토록 싫어했던 것이 오늘 갑자기 좋아지기도 하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신념이 부드럽게 꺾이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그토록 고수를 싫어하던 사람도 어느날엔가 자연스럽게 고수를 쌀국수와 함께 먹는 경우도 있고, 크록스를 혐오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던 사람도 어느샌가 실내용으로 신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마주할 때 어떤 이들은 자신을 일관성 없다고 자책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가 삶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성숙의 증거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의 기준이 유연하게 바뀔 수 있음을 허용하는 태도는 우리를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해방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직접 경험해 보면 그것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선호를 받는지 알게 되는 경우도 많구요.

이러한 변화에 대한 반응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적용가능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 절대로 상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투, 사고방식, 스타일 전부 맘에 안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수도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는 그 사람만의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말이죠.어제까지 확신했던 정답이 오늘부터는 오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은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만의 유연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수용의 미학: 건강한 마음을 위한 최고의 처방전

수용은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수용: 현실을 무기력하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

수용은 아주 높은 수준의 적응의 과정이며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경우에 얻어지는 이점이 많은 적응방법이지요. 반면에 변화를 거부하고 예전의 기준만을 고집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비용은 생각보다 막대하며, 이는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이어지곤 합니다. 마치 용각산의 쓴맛을 거부하던 아이가 그 효능을 인정하고 삼키는 어른이 되듯, 우리도 삶의 쓴맛과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더 건강한 마음의 근육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내, 외면의 갈등을 멈추고 에너지를 더 생산적인 곳에 쓰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세요.

지금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낡은 기준은 아닌지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세상임을 인정하고 나면, 예상치 못한 시련 앞에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이 생겨납니다.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절망하지 않고, 어제의 정답을 기꺼이 놓아줄 줄 아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떠세요? 그렇게 얻어진 마음가짐은 앞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며

변화와 수용을 통하여 파도를 잘 버텨볼 수 있는 힘을 길러봅시다.

인생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옷을 입어야 하듯, 마음의 옷도 때에 맞춰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 옷이 좋다고 고집하다가는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내 안의 낡은 기준을 찾아내고, 밀려오는 변화의 파도를 감당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심리상담은 당신의 옆에서 파도타기를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우리는 내가 왜 그토록 특정 기준에 집착했는지,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무엇이 걸림돌이 되는지를 탐색해보게 됩니다. 전문가와 함께 고민을 나누는 시간은 용각산처럼 텁텁하고 쓰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변화들이 사실은 당신을 보호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돕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홀로 고민하며 마음의 병을 키우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마음의 용각산 한 스푼을 편안하게 삼킬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변화하는 당신의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기다립니다.

MindG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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