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라는 말 대신 봐야 할 관계 패턴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통제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친구가 모임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기대한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하면 서운한 기색을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면 “운이 좋았네”라며 가볍게 넘기고, 다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죠. 나도 서운한 마음에 “내 얘기도 조금 들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너는 왜 꼭 좋은 분위기에서 불만을 얘기해?”라며 오히려 나를 탓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 사람이 내 이야기나 기분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왜 늘 자기만 중요할까? 혹시 나르시시스트일까?’라는 생각에 관련 글을 찾아보게 되기도 하죠.

나르시시스트와 관련된 글들을 읽다 보면 익숙한 모습이 보여 그동안의 사정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 사람이 정말 나르시시스트인지 확인하는 데에만 몰두하면, 정작 자신이 겪을 일을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요.

성격장애를 단정하기 전에

몇 가지의 에피소드로 성격장애를 단정하긴 어렵죠. 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겠지요.

요즘은 일상적으로 ‘나르시시스트’라는 표현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개인의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더 잘 알게 되면서 관련 용어들이 많이 일반화되었지요. 그래서 나르시시스트와 자기애적 성격장애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로 혹은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남 탓만 한다고 나르시시스트라고 추정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그런 진단은 정신과 의사의 고유 영역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메이오클리닉의 진단 안내에서도 증상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충분한 심리평가 등을 함께 살펴본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성격장애와 비슷한 특징이 있을 수도 있어, 일부 행동만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진단을 확인할 때까지 불편함을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허락 없이 휴대폰을 보거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는 행동에는 그 자체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진단명이 있든 없든 자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이름을 붙이는 것과 경험을 설명하는 차이는 나르시시스트, 꼭 그렇게 불러야 할까?에서도 다룹니다.

불편하다고 말한 뒤의 반응

우리는 누구나 말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상대가 상처받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요. 누군가의 성향을 파악할 때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혹은 상대방이 그러한 불편함을 표현했을 때 그 말실수를 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겁니다. 만약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불편했겠다. 다음부터 조심할게.”라고 답하고 실제로 조심하는지 알아보는 거지요. 만약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또 개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정말 단순 실수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정도도 못 받아줘?”, “너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잖아”라고 상대방을 탓하는 말로 대화를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가 한 말실수보다 자신이 왜 그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는지를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후에도 불편함을 이야기하거나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항의할 때마다 비슷한 답이 돌아온다면 그것은 실수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나도 몰래 생길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 애초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약속을 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나 자신이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비난받거나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고 그것이 만나던 사람이나 좋아하던 활동을 줄이는 데 영향을 주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그렇게 관계가 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걱정과 통제의 차이

늦게 귀가하는 연인에게 도착하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습니다. 두 사람이 그러한 연락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연락이 늦을 때마다 여러 번 전화하고, 위치를 보내라고 요구하며, 따르지 않으면 친구를 만나는 것을 못하게 한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스토리입니다.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집에 감금하고 못나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친구와의 만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회유하는 등의 방법 역시 우리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죠. 다른 방법으로는 “너가 걱정되서 그래”라는 식의 자신의 행동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에서의 학대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학대도 포함하며, 돈이나 만남을 통제하고 행동을 감시하는 문제를 모두 포함합니다. 이런 행동이 특정 성격장애를 뜻하고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그런 진단과는 별개로 개인의 안전을 위해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과 후에 행동이 달라지는지?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내 선택권을 제한하는 쪽이라면 분명 나르시시스트임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미안해”라고 말을 하면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넘어가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네가 화나게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는 설명이 이어지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사과를 한 이후의 행동이 어떤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 단어를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혹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선물을 주거나 꽃다발을 준비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단기적인 인정과 분위기 전환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냐는 점입니다.

물론 모든 실수가 똑같은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고 또 한 번 잘했다고 앞으로도 괜찮을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런 사과하는 태도가 일관성을 갖는지 아닌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니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를 돌아보는 3단계

1단계: 기억나는 장면 하나를 구체적으로 적어 보세요.

상대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고 난 어떻게 응답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적어보세요. “상대는 늘 이기적이다”보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모임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했다”처럼 쓰는 겁니다. 모든 일을 빠짐없이 기록할 필요는 없지만 자세하면 좋겠지요.

혹시나 상대가 내 휴대폰이나 계정을 확인한다면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상대가 확인하기 어려운 장소를 활용하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기관에 상황을 말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2단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면 요청을 구체적으로 전하세요.

“나를 존중해 줘”라는 말보다 “내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는 나에게 물어봐 줘”라고 말해 보세요. 상대의 성격을 평가하는 대신 어떤 행동이 달라졌으면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다만 이미 같은 요청을 충분히 전했다면 더 완벽한 표현을 찾아 계속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협이나 보복이 걱정된다면 이 단계를 건너뛰어도 됩니다. 거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하려고 일부러 맞서거나, 상대방을 시험하는 자리를 만들거나 하지는 마세요.

3단계: 달라진 점과 여전히 어려운 점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세요.

상대가 요청을 받아들였는지,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지, 자신이 아직 피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세요.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면 누군가에게든 “이런 일을 겪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생각해 줘”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기 부담스럽다면 심리상담에서 이야기해봐도 좋습니다.

정말 돌보아야 할 사람은.

학대적인 관계는 정서적인 부분에만 머물지 않고 더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거나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실행하거나 바로 거리를 두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상대방을 위해 함께 심리상담을 받자고 추진하거나 하는 일 역시 자극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구요.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상대방이 어느정도로 본인을 통제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면 좋습니다.

상대방이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만족감을 얻기 위한 과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규정짓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또 나 스스로를 쉽게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주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내가 관계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알아차림에서부터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잘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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